옷차림부터가 일반 회사원 같지 않은 이들. 아이디어 뱅크들이 모인 자리에는 유머와 촌철살인의 언어들이 오간다. 아이디어 회의 할 때도 분위기는 이렇단다.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브레인 스토밍'을 하다보면 대어를 낚게 되는 것. 반짝반짝 하는 아이디어 가운데 더 빛 좋은 아이디어들이 건져 올려지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마음에 강렬한 파장을 일으켰던 해태제과의 광고들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저희가 만든 광고의 반응이 좋으면 좋죠. 광고가 좋아 제품이 더 잘 팔린다는 말을 들으면 뿌듯해요." 이수경 대리의 말이다. 사실 광고가 제품의 이미지를 결정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제품의 구입 동기를 물어보면 '광고가 좋아서'라면 대답이 심심찮게 나올 것이다. 특히 매스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자란 젊은 세대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디지털 세대와 광고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 아니던가. 이러한 책임감 때문에 이들은 오늘도 머릿속에 불을 환히 켜고 탱글탱글 속이 꽉 찬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권율선 부장은 "해태제과 제품 중에는 유제품 쪽을 제일 많이 해요. 광고 만들기 전, 제품 컨셉트 연구를 많이 하죠. 어떤 방법으로 소비자들에게 이 제품을 소개할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수많은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요. 하나의 광고에는 많은 사람들의 땀방울이 담기게 되죠." 라고 말한다.
모든 창작물들이 그렇듯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다는 것은 녹록찮은 일이다.
광고는 그 중에서도 보는 정신노동이 심한 분야 중 하나. 보는 사람이야 편하게 보지만 만드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해야한다. 30초 속에 제품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아야 하고 때로는 몇 줄의 카피로 제품을 표현해야 하는 작업이기에 고되고 힘든 작업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만족도가 크다. 권부장은 클라이언트와 마음이 딱딱 맞아 좋은 결과물이 나왔을 때가 가장 보람 있다고.
광고주와 광고대행사는 절대적인 파트너십이 있어야 한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울어대는 소쩍새처럼 한편의 광고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손발 맞춰 생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호흡이 맞아떨어져야만 한편의 훌륭한 광고가 소비자들과 만날 수 있는 것. 해태제과와 LG애드가 찰떡궁합을 과시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광고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훌륭한 합작품이 하나 둘 씩 많아지면서 두 회사의 우의도 돈독해졌다.
"제품에도 이미지가 있듯 기업에도 이미지가 있잖아요. 해태제과 이미지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이어서 노후한 이미지가 있을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새로운 CEO 부임 이후에 기업 이미지가 쇄신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박혜란 CD의 말에 권부장은 "합리적인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기업"이라 덧붙인다.
몇 년간 호흡을 맞춰오다 보니 해태가 아주 친근하다는 이들. 앞으로도 이들은 찰떡궁합을 과시하며 소비자들의 가슴속에 폭풍처럼 휘몰아칠 광고를 만들어낼 것이다.
글·사진┃홍보팀 sabo@ht.co.kr
2003 제 16대 대통령 취임식 총괄진행

2002 사보 WPP계열사로 재탄생

2001 파나마 지사 설치 / 멕시코 지사 설치 / 브랜드전략연구소 설립

2000 취급액 6,000억원 돌파

1999 기업공개, 여의도 LG트윈타워로 사무실 이전

1998 대한민국광고대상 대상 수상 / 민간기업 최초로 ‘제15대 대통령 취임행사’ 주관

1997 상해 지사 설치 / 두바이 지사 설치

1996 뉴욕 지사 설치

1995 북경 지사 설치

1994 취급액 3000억 원 돌파, LG애드 창립10주년 사사 발간

1993 Omnicom PR Network와 업무제휴

1992 사내 광고전문교육과정 개설

1991 동경 지사 설치 / 한국방송광고대상 대상 (3년 연속) 수상

1989 취급액 1,000억 원 돌파

1988 제1회 LG애드 대학생 광고대상 제정, 시행

1984 (주) LG애드 발족, 종합광고회사로 출범

1981 제1회 한국방송광고대상 대상 수상

1978 희성산업(주)으로 독립광고대행사 체제 구축

1970 금성판매(주) 선전사업부 설립

1962 락희화학공업사 선전실 발족. 락희화학, 락희유지, 금성사 광고 담당

1960 금성 선풍기 광고로 본격적인 광고 활동에 들어감

1959 금성사의 첫 제품인 라디오의 생산과 함께 첫 광고 시작

1950 불모지였던 우리나라 광고업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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