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시간이 더해지면 추억이 된다. 추억은
바쁜 일상 속에서 꽁꽁 숨어 버리는 재주도 있지만, 어쩌다 그 중 하나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기다렸다는 듯 엮여 있던 고리들까지 솔솔 잘도 풀어낸다. 그 추억의 방 한 켠에
누가바가 있다. 누가바는 누구에게나 추억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언제든
다른 추억들을 여는 실마리가 되기를 자처하며 누가바라는 이름을 30년 넘게 지켜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바를 더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그 의리를.
오랜 공을 들여 만든
제품이 아주 오래도록 사랑받는 기쁨. 상상만으로도 뿌듯하고 가슴이 벅찰 만큼
행복한 일이다. 누가바를 처음 개발한 진홍승 박사에게서도 그 자부심과 애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진 박사는 초콜릿에서 코코아버터와 코코아파우더를 분리해 초콜릿의
씁쓸한 맛을 제거하고 대신 땅콩버터를 배합해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을 더한 새로운
초코바를 탄생시킨다. 모양도 동그랗고 길쭉한 모양을 개발했는데, 당시로선 획기적인
모양이었다.
“이것이 바로 누가바의 첫 모습입니다. 동그란 모양으로 만들게 되자 생산속도가
50% 이상 빨라지고, 초콜릿은 15% 정도 적게 소요되니 원가가 절감되는
효과까지 있었어요. 또 저를 포함해 세 명의 직원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국내
최고품질의 땅콩을 직접 공수해 특수 가공을 했으니 그 풍부한 맛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개발된 누가바는 당시 국내뿐 아니라 덴마크와 독일 북부지역에도 수출되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진홍승 박사가 기억하는 풍부한 그 맛처럼, 30년이 지나도록 소비자들에게 변함없이
사랑받는 ‘누가바’라는 이름은 원료로 사용하던 초콜릿의 기술명인 누가 초콜릿에서
본따 작고한 박병규 사장(당시 전무이사)이 ‘누가 볼까 몰래 먹을 만큼 맛있다’라는
의미를 담아 ‘누가바’라는 이름을 제안, 제품의 맛과 어울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이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던 터라 어려움이 많아 3월 중순으로 맞춰진 출시일을
지키기가 힘들었습니다. 당시 문책 이야기까지 나왔는데, 때마침 눈이 내려
그 고비를 넘겼지요.”
때 아닌 추위를 몰고 온 눈이 내린 그 날, 1974년 3월 16일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진 박사는 충분한 맛과 구성요소로 30년 간 큰 사랑을 받아온
누가바가 시장 가격에 매이지 말고 맛과 향, 품질의 차별화로 소비자들에게
영원히 사랑받기를 바란다는 깊은 애정이 담긴 조언을 잊지 않았다.
“누가바는 1974년 3월생으로,
올해 서른한 살인 셈입니다. 제품 출시 당시 콘으로만 만들던 아이스크림을
바 형태로 만들었고 또 최초로 씹히는 질감이 바삭바삭한 ‘초코 코팅’이라는
방식을 적용해 그때로선 매우 획기적인 제품이었죠.”
누가바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I/C BM 노현진 ABM의 말이다.
또 당시만 하더라도 스틱 빙과류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고 초코나 바닐라
맛이 대중화되지 않은 때라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누가바의 놀라운
맛은 부드러움과 달콤함을 선호하는 20대 여성층의 혀끝을 단숨에
사로잡았다고 한다. ‘누가 볼까 몰래 먹는 누가바’라는 광고 컨셉
역시 제품과 찰떡궁합처럼 잘 맞아떨어져 누가바의 인기몰이에 큰 몫을
했다.
처음 출시 당시 30원에 판매되던 누가바가 오늘날 500원이 되었고,
제품 타입도 아이스밀크에서 빙과, 셔벗, 현재의 아이스크림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만큼이나 파란만장한 변천사를 거쳤다. 그러나 누가바에 대한
고객의 ‘충성도’만큼은 변함이 없다. 매년 20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아직까지 변함없는 ‘젊음’을 구가하고 있는, 해태로서는
기특한 효자 제품인 셈이다.
누가바가 이처럼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최연철 유제품개발팀 선임연구원의
대답은 명쾌하다.
“맛있기 때문이죠. 땅콩 초코의 고소함과 유지방 7%대 고급 바닐라 크림의
풍부하고 진한 맛이 최고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대중적인
맛을 찾아냈다고 볼 수 있죠. 어렸을 때부터 그 맛에 익숙해진 고객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찾게 되는 이유고요.”
누가바는 10대에서 중장년까지 빙과시장에서는 드물게 구매층이 두터울 뿐만 아니라
그 폭은 갈수록 더욱 커질 것 같다. 누가바는 이제 단순히 빙과류 간식이 아닌
‘추억이 어린 문화상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누가바에 대한 사랑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누가바를 살피고 돌보는 담당들의 역할이 크다. 누가바
마케팅 담당 노현진 대리는 ‘오래 된 브랜드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새로운 패키지 디자인을 개발하고, 기존의 성인층 타깃을 유지하면서 젊은 층에도
어필할 수 있는 광고와 이벤트 전략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한다. 제품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최연철 선임연구원도 ‘최초의 아이스크림 초코 코팅 제품의 자부심을
오래오래 이어갈 수 있도록 제품의 맛과 품질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