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양 지역의 엄청난 화마로 인해 소중한 문화유산은 간 데 없이 사라지고
그 어느 때보다 절정일 아름다운 봄날의 풍경이 퇴색되긴 했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봄 꽃이 전 국토를 뒤집어놓았다. 지금 전국은 어디를
가나 봄의 한가운데에 섰다. 동백, 매화, 개나리에 이어 봄 꽃의
대명사인 벚꽃도 어느 덧 화려 한 퇴장을 맞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이름처럼 진달래로 한껏 불이 붙어 있을 화왕산을 찾았다. 경남 창녕의
화왕산을 찾으면 진달래의 빛깔에 취하는 즐거움은 물론, 가야문화의
중심이던 창녕군과 원시적 늪지로 가치가 높은 우포 늪까지 여유로운
봄 여행길을 만끽할 수 있다.
벚꽃이
도심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봄 꽃이라면 진달래는
약간의 다리품을 팔아야 볼 수 있는 꽃이다. 대부분 산
능선에 집단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어 가까운 듯 하지만
쉽게 범접하기 어렵다. 다가갈수록 알 수 없는 님의 마음이랄까.
그래서인지 진달래에는 많은 사연이 담겨 있다. 진달래를
소재로 한 시와 노래가 유독 많은 것도 이 때문은 아닐까.
남녘의 웬만한 산을 오르면 어렵지
않게 진달래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중 진달래명산으로 불리는 곳도
적지 않다. 경남 창녕에 위치한 화왕산(火旺山)은 이 중에서도 손꼽히는
진달래군락지이다. 가을이면 억새 장관을 이루는 바로 그 곳으로 화왕산은
이름처럼 봄이면 진달래로 불붙고, 정월대보름이면 억새를 태워 온
산에 불이 붙는다.
높지 않은 산(757m)이지만 많은 볼거리가 있다. 화왕산을 오르려면
창녕읍 말흘리 자하곡 매표소와 창녕읍 옥천리 옥천매표소 2곳에 나
있는 등산로 중 한 곳을 택해야 한다. 이번 산행에서 나는 자하곡을
택했다. 4~5월이면 입구에는 말 그대로 꽃 잔치가 벌어진다. 진달래도
지천이다. 5월 중순이면 만개상태를 지나 영락(零落)의 세계로 접어들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진달래 지천인 그 때 못지 않은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린다. 신록이다.
시작부터 경사가 가파르지만 상춘곡을 읊다 보면 힘들 겨를이 없다.
산세가 만만치 않은 것으로 미뤄 유서 깊은 절 하나쯤 나올 법하다
했는데 과연 그렇다. 20분 가량 걸으니 두 갈래길이 나온다. 왼쪽에는
‘도성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신라 현덕왕 2년(810년) 지월선사가
창건했고 임진왜란때 불에 타 없어졌다가 이후 중건됐다.
절에서 나와 오른쪽 길로 방향을 잡으니 산림욕장이 있고, 또 두
갈래 길이다. 창녕 읍내도 내려다 볼 겸 전망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산림욕장에서 전망대로 오르는 길은 하늘을 가릴 듯이 솟은 소나무
사이로 핀 진달래가 어우러져 오묘한 색채의 대비를 빚어낸다. 10분을
지나니 뒤로 창녕 읍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물 한 모금과 함께 신발끈을 단단히 묶는다.
전망대를 지나는 이 코스는 제1등산로라고 부른다.
대부분 바위산으로 구성돼 있어 오르기가 쉽지 않다. 암벽등산에 가깝다. 곳곳에
로프가 매달려 있는데 오르다 보면 이 줄에 의지해야 할 때가 많다. 대신 고생하는
만큼의 보답이 기다린다. 숨이 막힐 정도의 난코스이지만 그 숨이 단번에 트일
만큼 아름다운 경치가 이어진다. 바위산 하나를 지나면 또 다른 바위산이 나타나지만
그 바위에 올라 바라보는 사면의 풍광은 눈을 떼지 못하는 즐거움이다.
네발 짐승처럼 사지(四肢)를 이용, 산을 오르기를 1시간. 드디어 바위산 정상,
배바위라는 곳에 이르렀다. 바위틈이 좁아 사람들이 배를 붙이고 지나가야 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평지나 다름없다. 5만 6,000평
규모의 분지가 펼쳐진다. 진달래 군락이기도 하지만 이름난 억새군락지로 사람
키만한 억새평원이 눈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였던 화왕산성,
유배지로
떠나는 연인을 쫓는 장금의 애틋한 말이 느껴진다.
앞에 펼쳐진다.
화왕산 정상 일대는 진달래와 억새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쪽으로 향하면 세 군데에 물이
고여 있는 용지라는 연못이 나오는데 창녕 조씨의 시조가 잉태된 영지로 알려져 있다.
용지 옆으로 나 있는 화왕산성(사적 64호)도 볼거리. 몇 년전 큰 인기를 끈 드라마
‘대장금’의 촬영지이다. 대장금 칭호를 부여 받은 의녀 서장금이 기뻐할 새도 없이 귀향을
떠나는 그의 연인 민정호를 쫓아 뛰어오는 애틋한 장면이 바로 이 곳에서 촬영됐다. 그러고
보니 이병훈 감독이 유독 화왕산에 애정이 깊은 모양이다. 산성 동문을 지나 관룡사로 가는
길에서 그의 또 다른 대표작 ‘허준’과 ‘상도’를 찍은 세트장을 만나볼 수 있으니 말이다.
올라올
때 전망대코스를 택했으니 제2등산로를 이용, 하산한다. 정상에서 내려와 오른쪽으로
길이 나 있다. 내리막길 경사가 심해 조심해야 한다. 난코스가 400m 가량이지만
이 길을 오르막길로 택했다면 느낌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고개 이름이 ‘환장고개’란다. 오르막길이 너무 험해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숨이 거의 넘어간다고 해서 ‘깔딱고개’라고도
한다. 다행이도 환장고개 입구에서 나머지 코스는 평이하다. 화왕산 등산길은
몸은 힘들지만 눈이 즐거운 여행이다.
화왕산의 절경과 창녕군이 한눈에 내려다 보여 숨막히던 산행을
단숨에 잊게 하는 바위산 정상, 배바위
산을 내려왔다고 여행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창녕은 신라시대 이전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던 가야문화를 꽃피웠던 곳으로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외로 다양한 유적이 산재해 있다. 그만큼 전국 최대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의 규모 있는 관광지도 적지 않다. 숨겨진 보물을
찾아 나서는 마음으로 둘러보자.
우선 우포 늪으로 향한다. 전국 최대의 자연 늪이 있는 곳이다.
경남 창녕군 유어면, 이방면, 대합면 일대에 걸쳐 있는
70만 평 규모의 습지이다. 우포 늪, 목포 늪, 사지포, 쪽지벌 등 4개의 습지를 통틀어
일컫는 우포 늪은 낙동강의 범람으로 인해 생겨난 자연습지이다. 늪의 모습이 소의 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하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육지로 변해가고 있어 지금은 뭍도 아니고
물도 아니어서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가히 생태계의 보고라 할 정도로
일반 강이나 호수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 생물들이 많은 것은 물론, 앞으로 300년이
지나면 이 일대가 모두 육지가 된다는 학설이 나오면서 이런 과정에 있는 습지의 중요성과
함께 우포 늪에 대한 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현행법상 지하수의 온도가 섭씨 25도 이상이면 온천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온천욕을 즐기려면 최소한 40도 안팎은 되야 하는 법. 적지 않은
온천들이 원수를 끓여서 고객들에게 내놓기도 하지만 온천이 너무 뜨거워 식혀서 내놓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창녕의 부곡 온천으로 온천 원수의 온도가 78도, 국내에서
가장 높다. 온천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이미 이 일대에 온천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하는데, 현대적인 온천개발은 1973년에 이뤄졌다.
온천지구 규모만 150만 평으로 유황 성분이 다량 함유된 알칼리성 온천으로 피부질환,
신경통, 변비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탕 속에 몸을 담그면 대번 알 수 있다.
피부가 매끄럽고 부드러워지며 온천수를 그대로 마시면 당뇨병과 위장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반면 흥분작용이 강해 흥분을 잘 하는 체질이나 노약자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니 유념하시길….
